제목 : 독립운동가 권영해 (1회) 동문 등록일 : 2005-05-23    조회: 1047
작성자 : 사무국 첨부파일:
아들 4명 - 손자 6명을 계성 후배로 키워

독립운동가 권영해 (1회) 동문

아버지 - 두 아들 - 세 손자의 3대 계성가족도 두 쌍
쌍둥이아들 모두 계성, 장인도 소속회사 사장도 계성


계성학교 1회 졸업생은 모두 12명이다. 계성학교의 역사를
말해주는 각종 자료들에는 그 12명의 이름이 나란히 기록되
어 있다. 1회 동문들께서는 모두 타계하셨다. 1회 동문들이
생존해 계신다면 현재 115세에서 120세 안팎의 연령이시다.
개교 당시에는 정해진 학령이 없고 개인 사정에 따라 입학을
했기 때문에 학년은 같아도 동기생끼리 나이 차이가 많았다.
하여간 1회 12분 중 한 분이 바로 독립투사 권영해 동문이시
다.

권영해 동문은 제6대 간친회장도 역임하셨다. 간친회장이란
요즘말로 총동창회장이다. 계성학교 총동창회가 처음으로 결
성된 것은 1913년 3월인데, 기록에 의하면 1918년 제6대 총
동창회장에 취임한 권영해 동문 때부터는 처음으로 입회금
과 연회비를 받을 정도로 조직화되었다.

권영해 동문의 아들은 6명인데, 그 중 장남 권학윤(동부교회
장로)님은 계성 15회, 4남 권혜윤(섬유회사 경영)님은 계성 28
회, 5남 권병의(의사)님은 계성 35회 동문이니(6남은 계성학교
졸업년도에 병사) 일곱 부자 가운데 다섯 명이 계성 가족이다.
대단하다. 그런데도 권씨 가문의 <계성 동문화>는 거기서도
멈추지 않고 계속되어 차남 권성운(나환자시설 대구애락원
총무, 전쟁고아 육영 성광보육원 설립)님은 세 아들 권형국
(57회), 권형민(60회, 두 아들 권순석, 권순욱 계성초 31회, 35
회), 권형우(63회)를 동문으로 탄생시켰고, 4남 권혜윤(28회)
님은 쌍둥이 아들 권순열(54회),권준열(54회)을 계성 가족으로
만들었으며, 5남 권병의(35회)님도 외동아들 권동혁(66회)을
계성동창회 회원으로 등록시켰다.

사정이 이 정도이니 할아버지 권영해 동문을 정점으로 하
는 3대 계성가족이 둘이나 탄생하였다. 할아버지 권영해(1회)
동문- 아버지 권혜윤(28회) 동문- 아들 권순열, 권준열 쌍둥
이 아들(54회) 동문의 3대 계성가족과, 할아버지 권영해(1회)
동문- 아버지 권병의(35회) 동문- 아들 권동혁(66회) 동문의
또 다른 3대 계성가족이 바로 그것이다.

참으로 계성과 인연이 대단한 집안이다. 그러다 보니 시민
단체인 달서사랑시민모임의 대표로 지난 총선 때 열린우리당
공천을 받아 달서을 선거구에 입후보했던 권형우(63회) 동문
의 저서『느티나무』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권대표
(필자주: 권형우, 63회)에게 어머니는 늘 특별한 존재로 다가
온다. 일제시대 탄압받던 독립투사(권영해, 1회)의 며느리로
서, 해방 후에는 나병환자와 전쟁고아 등 자선사업에 한평생
을 바쳤던 한 남자(권성운)의 아내로서 그의 모친은 수많은 고
생을 묵묵히 감내해야 했다. 그 분들에게 권대표의 모친은 가
족 이상의 의미를 지닌 든든한 동지였다. 그러나 그의 모친의
고생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민주화운동에 뛰어든 막내
아들(권형우)의 고난한 삶은 또 다시 고스란히 모친에게로 이
어졌다.’

권영해 동문을 할아버지, 아버지로 모신 10명의 계성 가족
동문 가운데 가장 막내인 권동혁(66회, 삼성테스코 상무) 동문
은 가계가 온통 계성인이 되다 보니 에피소드도 많다며 옛날
을 회상한다. 권 동문이 결혼을 할 때 예비 장인되시는 분이 또
계성가족이셨다! 예비 장인 되시는 분은 대진섬유 사장으로
대구경제계에서 큰 활동을 하던 이경달님이었는데 바로 계
성 39회였다는 것. 그래서 권동문이 큰아버지께서도 섬유공장
을 하신다고 말씀드리니 예비 장인께서 누구시냐고 묻게 되
었고, 권 동문의 큰아버지가 28회 권혜윤 동문임을 안 예비 장
인 이경달 동문은 젊을 때 그 분과 함께 활동하기도 했다고 지
난날을 추억하시게 되었고, 급기야는 더욱 화기애애한 결혼
식이 되었다는 고백.

게다가 결혼식은 진풍경이었다고 한다. 권 동문의 부친 권병
의(35회) 동문과 장인 이경달(39회) 동문이 혼주인 이 날 결
혼식에는 그 친구분들이 줄줄이 나타났는데, 신랑 권 동문의
은사이자 신랑측 혼주와 계성 동기생인 신용수(35회) 교감선
생님, 신부측 혼주와 계성동기생인 권오석(39회) 선생님, 이종
현(39회) 선생님, 정재표(39회)선생님, 서정원(39회) 선생님,
김예현(39회) 선생님께서 혼주와 신랑 신부를 보러 오셨고, 신
랑의 계성 동기 친구들 또한 부지기수로 결혼식 하객으로 왔
으니 바로 계성동창회를 방불케 할 경지이었다는 것. 게다가
권 동문의 계성과의 인연은 사회생활을 하는 데도 이어져 삼
성그룹에 경력사원으로 입사하여 유통분야로 배치되었을 때
삼성그룹 유통분야 사장으로 모시게 된 최고상급자가 바로
계성 선배인 이승한(52회) 동문이었다.

덧붙여 회고하자면, 사실 신랑 권 동문의 결혼식에 정작 아
버지인 권병의(35회) 동문은 참석하지 못했다. 신랑이 대학 1
학년 때이던 해에 이미 뇌암으로 별세하셨기 때문. 세브란스
의대를 졸업하고 대구 내당3동 870번지에 명성의원을 개원하
여 많은 환자들의 고통을 풀어 주었던 권병의(35회) 동문이지
만 갑자기 찾아온 병마에는 어쩔 수 없이 타계를 하셨던 것이
다.

권동혁(66회) 동문은 말한다.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기일을 잊지 말라고 그러셨는지 어버
이 날인 5월 8일에 돌아가셨습니다.”남기진 총동창회 부회장,
필자와 더불어 세 사람이 모여 환담을 주고받던 권 동문은 비
록 말에는 재치를 담고 있지만 회고의 현장이 마침 모교 총동
창회 사무실인 탓인지 선배 동문이자 아버지를 그리는 애틋
한 눈빛을 감추지 못했으며, 앞으로 계성학교와 동창회 발전
을 위해 미력한 힘이나마 돕겠다는 맹세를 거듭거듭 반복하
였다.

글·정만진(6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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